[폭설, 그리고 고립]
1. 내가 교환학생으로 보스턴에 있었던 2015년 그 겨울은 보스턴에 그때까지의 역사상 가장 많은 눈이 온 겨울이었다. 4개월 학교 생활 중 폭설로 인한 휴교만 2주는 됐고, 뉴욕에 잠시 놀러갔을 땐 보스턴으로 가는 모든 길이 눈으로 차단되어 뉴욕에 며칠 갇힌 적도 있었다.
2. 내가 가벼운 관광차 제주도에 놀러간 2016년 1월에 제주도에는 32년만의 최대폭설로 인해 제주도 섬 전체가 고립, 나는 친구들과 3일동안 섬 탈출을 위한 일생일대의 모험을 한 적이 있다.
3. 내가 도쿄에 오니 도쿄에 4년 만의 폭설이 왔다. 난 여행 기간에 눈 예보가 있는지도 몰랐다. 심지어 숙소를 나올 때까지도 이게 폭설인지 몰랐다.
눈발이 흩날리던 오후, 지하철 한조몬선을 타고 시부야로 가는 길이었다. ABC마트는 일본 회사다. 시부야에 새로 오픈한 ABC마트 그랜드 스테이지는 세계 최강의 신발 가게가 아닐까 하는 기대를 품고 쇼핑을 하러 가던 참이었다.
시간 잘맞추기로 유명한 일본 지하철이 정차하는 역마다 5~10분씩 문을 열어놓고 승강장에 있는 사람들을 최대한 밀어넣고 출발했다. 3정거장 가는데 20분 넘게 걸렸다. 차내 방송으로 무슨 설명을 계속 했지만 못알아들었다.
겨우겨우 시부야역까지 도착해서 내렸는데, 뭔가 이상했다. 지하철을 타기 위한 줄이 승강장을 넘어서 계단 위까지 이어져 있었다. 계단 위에서는 놀이기구 줄서듯이 줄을 끊어서 승강장 진입 인원을 조절하고 있었다. 도쿄 대도시권이 아무리 인구 1400만의 세계 최대규모의 도시라고 해도 이정도는 아니었던것 같다.
엄청난 인파를 구경하고 있는데, 도쿄대 다니는 친구한테 도쿄 지하철이 유약하니 차 끊기는걸 조심하라는 연락이 왔다. 지나가던 한 일본인 할머니가 나한테 여기 무슨일 있냐고 물어봤다. 내가 눈 때문인것 같다고 대답했더니 신기해했다.
다년간의 폭설+고립 경험으로 나는 고립의 감각을 길렀다. 이 혼란, 이 공간, 이 공기 모든 것이 2년 전 제주도에 고립되던 그날을 떠올리게 했다. 이대로 있다간 시부야역에 고립된다. 시부야에서 숙소까지는 도보로 2시간이 넘는 거리, 이 날씨에 걸어서는 못간다. 어떻게든 지하철을 타야했다.
구글맵은 긴자선이 가장 빠른 길이라고 했다. 하지만 긴자선 승강장으로 들어가는 줄은 이미 그 끝이 어딘지 안보일 정도로 연장되어 있었다. 한조몬선이 두 번째로 빠른 길이라고 했다. 한조몬선은 내가 방금 타고 온 그 노선이라 느낌이 좋지 않았다. 나는 구글맵이 세번째로 제안한 후쿠토시선으로 몸을 돌렸다. 후쿠토시선 승강장은 아직 여유가 있었다.
나는 그렇게 가까스로 시부야역을 탈출했다. 그로부터 얼마 뒤 시부야역은 승객의 입장을 제한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