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는 짜릿한 일이다.
나는 2017년 12월 28일 첫 직장 퇴사를 결심했다.
2017년 12월 28일은 하남 스타필드에 위치한 PK마켓을 리뉴얼하는 날이었다. 불쌍한 제조업체인 내 전직장 씨*이*일*당은 유통업체가 매장을 리뉴얼할때마다 달려가서 진열을 도와줘야했다.
그 곳은 내 담당 매장은 아니었지만 우리 팀 다른 사람 담당이었기에, 팀의 막내 중 한 명인 나는 진열 작업 지원을 위해 아침부터 차출되어갔다. 그 사실에 빡쳐서 퇴사를 결심한 것은 아니다. 그걸로 퇴사하려고 했으면 이미 진작에 했었을 것이다.
오히려 그 날은 일종의 힐링이었다. 진열 작업을 핑계로 회사한텐 바쁘게 보이며 다른 일을 잠시 손에서 놓을 수 있었고, 지긋지긋한 거래처 전화도 안받을 수 있었다. 심지어 진열작업이 평소 퇴근시간보다 훨씬 빨리 끝나 '조기직퇴'라는 초-카와이한 것을 처음 맛보게 되었다.
입사 후 처음으로, 평일 오후 시간에 어떤 연락도 업무도 할 필요가 없는 시간이 주어졌다. 나는 주차된 차 안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며 습관처럼 구직 사이트를 둘러봤다. 이미 몇주전부터 구직 사이트를 뒤지며 이직을 꿈꿨지만 실행한 적은 없었다.
그 사이트에서 얼마 전 발견하고 마음에 들었던 우버코리아의 오퍼레이션 어쩌구 라는 인턴 채용공고를 한 번 자세히 훑었다. 직무기술서는 재밌어 보였고 가슴이 뛰었다. 저런 곳에서 저런 일을 한다면 정말 재밌을 것 같았다. 그 공고를 필두로 재밌어보이는 일자리를 몇 개 더 발견했다. 많지는 않았다. 아무튼 있었다. 재밌을 거라고 기대하며 도전할 수 있는 일들이 이 세상엔 있었다. 그리도 다행히도, 나는 지금 당장 그런 곳에 지원하고자 마음만 먹으면 (될지 안될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지원서 한두장 정도는 채울만한 경험과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상술했듯 그 때는 모처럼 여유가 있는 상황이라서 다시 한 번 생각을 정리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은 재미가 없었다. 입사 후 거의 반 년간 이 회사에서 재밌는 일은 거의 없었다. (유일하게 재미있었던 한 가지는 신입사원들끼리 모여 시각장애인의 식료품 이용 편의를 도모했던 것이다) 이 회사를 재밌게 다니는 사람도 발견하지 못했다. 이미 그 전에 이 회사에서 재미를 찾을 수 있다고 나에게 설득해줄 사람을 한 달 넘게 찾아다녔었다. 지금 일이 마음에 안드는 것은 확실한데, 그렇다고 이 힘든 시기를 이 안에서 견디면 언젠가 재밌는 일이 찾아올까?
그것을 확신할 수 없다면 굳이 지금 이 순간을 견디고 있을 필요가 없었다. 나중에 이 회사에서도 어쩌면 그런 일이 찾아올 수도 있겠지만, 지금 그만두면 지금 당장 재밌어보이는 일에 도전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 전까지 회사에 대해 수많은 불만을 쌓아갔지만 이런 식으로 빠르고 강렬한 결심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불만만 가지고 퇴사를 결정하긴 힘든 일이었다. 6개월간 불만과 고통 속에서 견디고만 있던 그 전까지의 나에게, 가능성을 발견하고 재미를 꿈꾸게 된 그 날의 내가 '이제 그만해도 된다'라고 대답해줬다.
그 날 퇴근시간이 되기 전에 나는 퇴사를 결정했다.
집에 가서 부모님께 전했고, 그 다음날 집안 어른들께 말씀드렸고, 그 바로 다음 출근일인 1월 2일 출근하자마자 새해 선물로 회사에 퇴사 의사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