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9월, 나는 브랜드마케팅을 하는 인턴이었는데 계약 종료를 앞두고 있었고 계약이 끝나면 그대로 백수였다.
그리고 대략 비슷한 일을 하려고 하는 대략 비슷한 처지의 친구가 있었다.
둘은 저성장 취업한파 시기에 살아갈 길을 찾고자 하는 대한민국의 흔한 청년들이었고 브랜드를 좋아했다. 그래서 도쿄로 브랜드 탐방을 떠나기로 했다. 우리나라보다 먼저 저성장기를 맞이했던 일본의 수도에서, 10년 전 우리와 같은 시기를 살아갔고 지금은 어떻게든 30대의 삶을 살고 있을 초기 사토리세대들이 지금 어떤 삶을 사는지 목도하고, 그들이 향유하고 있는 브랜드에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브랜드의 미래를 찾아보고자 했다. 일개 백수들의 짧은 여행의 목표로는 꽤나 장황하지만 다소간 진심이었다.
물론 실제로 이런 컨셉으로 여행이 유지될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 아무튼 컨셉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이런 책들을 챙겨서 후딱 떠났다.
1. 퇴사준비생의 도쿄
2. 어반리브 No.3 도쿄
3. 도쿄 카페놀이
비행 스케쥴은 이렇게 4박 5일이었고 이 표를 둘이 합쳐서 인터파크로 508,000원에 구매했다.
자 도쿄에 도착했다. 일반 여행 후기처럼 풀어쓰려면 다시 기억해내야 할 것이 너무 많아질 것 같아서 이 여행기는 사진으로 기억되는 방문지나 브랜드 단위로 서술할 것이다.
1. Soba Usa 소바 우사 (혹은 Soba Stand)
〒102-0083 Tokyo, Chiyoda, Kojimachi, 2丁目5-2 金森共同ビル
말 그대로 서서 먹는 소바집이다. 숙소 근처에서 핫한 맛집이라길래 찾아갔는데 사진에서 보다시피 모던하지만 허름하다. 좁은 공간이지만 앉는 좌석을 두지 않고 모두 서서 먹도록해서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들어갈 수 있다. 엄청 오래된 맛집이 있을 것 같은 위치에 있었던 새로 생긴 모던하고 허름한 맛집. 모두가 서서 조용히 자기 끼니만 때우고 알아서 갈 길 가는 공간. 사토리와의 첫만남이었다.
맛은 있었지만 한국인 기준으로 면이 좀 딱딱하다. (면을 더 익혀달라고 요청할 수 있긴 하지만 일본어로 해야한다.)
2. The Conveni 더 콘비니
〒104-0061 Tokyo, Chūō, Ginza, 5 Chome−3−1 銀座ソニーパーク地下1階
일본의 유명 디자이너라고 하는 '후지와라 히로시' 라는 사람이 오픈한 편의점 컨셉의 편집샵이다. 사실 방문할 때는 정확히 몰랐는데 찾아보니 글로벌 브랜드들과 협업하는 세계적인 패션 디자이너라고 한다.
계산대, 매대, 공간구성 전부를 편의점처럼 해놨다. 냉장고에 악세사리와 티셔츠가 걸려있고, 음료수캔 안에 수건이나 에코백같은걸 넣어 놨다. 다 파는거다. 비싸다. 신기한건 또 실제로 편의점에서 파는 과자나 음료수 같은것도 같이 판다. 하지만 이런 컨셉을 도입하다는 것이 독특하다는 것 외의 좋은 인상은 없다. 공간이 좁고 살 것도 많이 없다.
매장이 쏘니 건물에 있어서 들어가는 길에 로봇 강아지가 반겨준다. 로봇 강아지 구경하는게 더 재미있다.
3. MUJI 무인양품 (유라쿠쵸점)
〒100-0005 Tokyo, Chiyoda, Marunouchi, 3 Chome−8−3 インフォス有楽町 1~3F
자연, 당연, 무인
무인양품 유라쿠쵸점 1층의 식료품 코너. 일본 각 지역에서 공수해온 로칼 식료품들을 판다
무인양품의 여행코너에서 파는 블럭 티셔츠. 티셔츠를 블럭모양으로 압축 포장해서 여행갈 때 몇개씩 챙겨가기 좋게 해놨다. 티셔츠는 이쁘지는 않다.
일본 무인양품 큰 곳에는 보통 카페 겸 식당 코너가 있다. 보통 일본 가정식 같은 것을 카페테리아 형식으로 판다. 엄청 맛있진 않지만 적당한 식사인데 일본인 입장에서는 매력적이지 않은지 보통 그렇게 붐비진 않는다.
무인양품은 1980년 일본 슈퍼마켓 체인 세이유의 PB로 시작한 브랜드다. 無印良品[무지루시료힌] 자체가 브랜드가 없다는 뜻이니까 이마트의 노브랜드처럼 시작된 것으로 추정해본다. 처음 모습이 어땠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본의 호황기에 시작한 이 브랜드는 저성장기에 접어들며, 저성장기에 적응한 일본인의 삶을 담아내기 시작했을 것이다. 지금 내가 생각하는 MUJI는 현대 일본인의 라이프스타일을 가장 잘 담아놓은 가장 일본스러운 브랜드다. 라이프스타일을 어디까지 커버하는지 보고싶어서 가장 큰 매장이라는 유라쿠쵸점을 찾아갔다.
거대한 3층짜리 건물이다. 예상과는 다르게 들어가자마자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가드닝 관련 상품들이다. 무인양품의 상품들로 구성된 작은 집과 다양한 식물들로 1층 공간을 꾸며놨다. 그렇다면 요새 일본인들이 집중하는 라이프스타일은 식물과 가드닝일 수도 있겠다, 라고 추정해본다. 의류, 잡화, 가공식품 등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무인양품 제품들은 2층에 있다. 3층은 자전거, 전자제품 등이다. 진짜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라이프스타일을 제공하고 있었다. 마감시간이 임박해 빨리 보고 나왔다.
(오락실의 사토리)
역 근처의 자그마한 오락실을 들렀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 곳에서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이 전부 30~40대 남성이라는 것이다. 이 사람들이 여행을 시작할 때 만나고자 했던 초기 사토리세대, 그리고 우리의 10년후 모습은 아닐까? 이렇게 그들은 중년이 되어서도 소확행을 추구하고 있었다.
4. 199엔 생맥주와 닭꼬치 이자카야 삼대 조류멜로 (한조몬점)
〒102-0083 Tōkyō-to, Chiyoda-ku, Kōjimachi, 2 Chome−14 麹町パレスB1
일본에 왔으니 이자카야는 가봐야지 라고 생각하며 이자카야를 검색했더니, 구글맵이 저렇게나 긴 이름의 이자카야를 알려줬다. 찾아가서 진짜 이름이 뭔지 확인해보니 진짜 저 이름이 맞다. 체인점이고 모든 지점 이름이 '199엔 생맥주와 닭꼬치 이자카야 삼대 조류멜로' 다. 진짜 아사히 생맥주를 199엔에 팔고 닭꼬치도 판다. 이 체인점을 하는 사람은 일본판 백종원이 아닐까? 라는 생각과 함께 첫 날을 마무리 한다.